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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다

역사토론 · 2026-08-09 작성

단군왕검의 고조선이나 고구려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나라가 아니라 인류사회 발전단계설처럼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로 성장해 온 것이다. 윤내현은 『고조선연구』에서 “고조선 시대에 고구려는 난하 하류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구려, 고죽국, 기자조선, 한사군 등은 모두 같은 지역에 있었다”(447쪽)라고 했다.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가 수많은 마을이나 고을나라의 연맹체로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구려라는 나라도 작은 마을에서 고을나라가 되어 고조선의 거수국(연맹 소국)이었다가 고조선이 해체되면서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사회발전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위만이 들어왔던 낙랑군의 조선현은 한반도 대동강유역이 아니라, 난하 하류 동부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서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주나라 호(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封箕子於朝鮮). 고(구)려는 원래 고죽국이었는데 주나라에서 기자를 봉함으로써 조선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조선열전, 무제기 등)에는 한나라 유철(劉徹, 무제)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두었다”고 적고 있다. 두 기록에서의 ‘조선’은 단군의 고조선이 아니라, 고조선의 서쪽 변방인 난하 유역에 남아있던 ‘위만 세력의 점령지인 조선현’일테지만, 이로 인해 조선이라는 국호가 더럽혀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교과서에서도 고조선의 멸망 연대를 위만이 멸망한 BCE 108년이라고 한다. 위만의 점령지였던 조선은 일개 현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중앙정부인 고조선 전체로 혼동하여 역사를 축소하고 있다. 이 또한 조선이라는 국호가 더럽혀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封箕子於朝鮮)는 말은 기자가 제후(諸侯)로 책봉(冊封)되어 조선의 어느 지방을 다스렸다는 것인데, 이를 줄여 ‘봉기자(封箕子)’라고 할 때 역사적으로 이를 증명할 다른 문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봉기자는 ‘가짜 봉기자’(假封箕子)설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가 『논어』(자한편)에서 “공자(孔子)가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 했다. 누가 말하기를 ‘누추함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에 공자(孔子)가 대답하기를 ‘군자(君子)가 거기에 살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구절을 공자가 구이 조선에 가서 살고 싶어했던 것으로 해석해 왔으나, 이 구절의 군자는 기자라는 해석이 있다. 다시 말해 기자가 조선에 가서 살고 싶어했던 소망을 공자가 대신 표현해 준 것이다. 기자는 공자가 좋아한 학자였지 제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 기자조선국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BCE 323년에 기후(箕詡)가 등장하고 이어 기비(箕丕), 기준(箕準)이 번조선의 왕이 되면서 고조선의 서쪽 변방에 이른바 ‘기씨(箕氏)조선’이 번조선의 별칭(別稱), 이칭(異稱)으로 불린 것이다. 이 기씨조선과 기자조선은 전혀 별개이므로 착각하면 안 될 것이다. 기씨조선은 당연히 고조선의 제후국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이 가봉기자(假封箕子)를 이후에 악용하고 조작하여 침략 논리로 삼았다.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있던 단군의 조선을 계승한 나라가 위만이었다”는 식민사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고조선은 기자, 위만조선에 의해 계승된 것이 아니라, 북부여(北夫餘)가 고조선을 계승하였다. 고조선의 계승국을 위만정권이 아니라 북부여로 분명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나라의 국맥이 흔들린다. 그러면 고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고조선 사람들은 2000년 동안 남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전쟁을 한 적도 없다. 하(夏)의 걸(桀)을 응징할 때와 은(殷)과 접경지역에서 분쟁은 있었으나 대외적인 전쟁은 없었다. 위만과 한(漢)의 전쟁은 위만정권의 전쟁일 뿐, 고조선과의 전쟁이 아니다. 위만에게도 1년 동안 쩔쩔맨 한(漢)이 어떻게 고조선이나 북부여와 전쟁을 하겠는가? 이점을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한다. 왜 전쟁이 없었나? 고조선이 동북아의 최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96년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사군을 평양에 끌어들여 낙랑군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댓글 1개

  • hist**** · 2026-08-09 · 좋아요 2

    기자가 구이조선에 오고 싶어했다는 구절의 원문====『十一經問對』卷一 論語(問子罕篇): “對曰東夷者周朝鮮之地箕子受封於朝鮮能推道訓俗教民以禮義田(蠺)至今民飲食以籩豆為貴衣冠禮樂與中州同以箕子之化也君子居之一句恐指箕子言之非孔子自稱為君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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