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삼성기---치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역사토론 · 2026-08-27 작성
우리는 오랫동안 ‘단군의 후예’라는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아왔다.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으로 이어지는 3대의 고리는 한국 상고사를 떠받치는 견고한 기둥이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신화이자 역사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그 3대의 기둥만으로 우리 상고사의 그 거대한 지붕을 다 받칠 수 있는가?”
오늘 문헌들을 대조하며 다시금 깨달은 역사적 진실은 단순한 사학계의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축소하고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던 역사적 지평에 대한 시리도록 아픈 통찰이다. 고려 후기,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가 상고사 서술에서 핵심을 간략히 요약하는 과정에서 남긴 치명적인 실책—즉 배달국의 강력한 군주였던 치우(치우천왕)의 기록을 누락하고, 기자조선과 한3군을 온전히 수용해 버린 점—은 오늘날 우리 역사관에 깊고 어두운 그늘을 남겼다.
반면, 신라 안함로의 《삼성기 상》과 고려 말 원동중의 《삼성기 하》가 전하는 상고사의 지형은 놀라울 만큼 광대하고 정밀하다.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역년(歷年)과 왕대(王代)는 물론, 만주를 아우르는 지리적 범주는 우리 민족의 뿌리가 결코 한반도라는 작은 틀에 갇혀 있지 않았음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 서사 속에 숨 쉬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수행(修行) 문화’다. 37일(21일)간의 긴 기도와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는 한갓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하늘의 계율을 지키는 백성, 즉 ‘천계지맹(天戒之氓)’이 되기 위해 곰부족(곰토템족)과 범부족(범토템족)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다스렸던 성스러운 수련의 기록이다. 우리 민족은 환웅족과 웅녀족의 만남에서부터 이미 ‘수행’을 삶의 기본이자 국가의 철학으로 삼았던 깊이 있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환인, 환웅, 단군의 위대함에 안주하는 사이, 우리는 태호복희와 치우천왕, 그리고 웅녀군(熊女君)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한 축을 너무나 쉽게 외면해 왔다. 우리가 우리의 거인들을 ‘신화’라는 이름으로 방치하고 무관심으로 대할 때, 이웃 나라는 치우천왕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모시는 이른바 역사 편입을 주저 없이 단행했다.
남의 나라가 우리의 조상을 자기네 사당에 모시고 주인을 자처하는 이 기이한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가. 이 사태는 우리 사학계와 국민 모두가 뼈아프게 성찰하고 통열히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조상의 이름을 빼앗기고도 침묵하는 민족에게는 정통성이 설 자리가 없다.
이제는 외면했던 거인의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복희와 치우, 웅녀의 역사를 당당히 우리 상고사의 한복판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파편화된 옛 기록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하늘을 받들고 스스로를 수련하던 백성들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자, 빼앗긴 역사적 주권을 회복하는 당당한 선언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거대한 뿌리를 다시 직시할 때, 비로소 한국 상고사의 진정한 정통성이 온전히 빛을 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 3개
rave**** · 2026-08-28 · 좋아요 2
치우(蚩尤)를 어떤 호칭으로 볼 것인가는 신시 밝달국(배달국) 사관 내에서도 정리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치우를 ‘환웅’의 계보(14대 자오지 환웅)로 볼 것인지, 그와 별개로 ‘치우천왕’이라는 독자 칭호로 볼 것인지, 혹은 후대에 쓰인 ‘천황’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합니다. 배달국 사관의 정합성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관점의 차이를 먼저 규정하고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hist**** · 2026-08-29 · 좋아요 1
현명한 문제 제기입니다.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slow**** · 2026-08-30
이분 진심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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